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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주요 도시의 주택 가격 대비 소득 비율(PIR)은 2024년 기준 평균 9~12배 수준까지 벌어졌습니다(출처: Numbeo 글로벌 부동산 지수). 이 숫자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전원주택을 알아보면서 느낀 것도 비슷했어요. 좋은 집의 기준이 사람마다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그리고 그 기준이 앞으로는 더 빠르게 바뀌겠구나 싶었습니다. AI와 모듈러 기술, 자율주행이 맞물리면서 집이라는 공간의 정의 자체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주거 양극화, 이미 로마 시대에 답이 있었다
로마 시대 주거 형태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귀족이 살던 도무스(Domus)와 일반 서민이 거주하던 인슐라(Insula)입니다. 여기서 인슐라란 엘리베이터도 없는 다층 공동 주거 건물로, 부엌도 화장실도 공용이었던 공간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지금의 고시원이나 공유 주택과 구조가 거의 같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 당시에도 돈이 많을수록 공용 공간을 사적으로 쓸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도무스에는 개인 목욕탕, 극장, 심지어 승마 공간까지 갖춰져 있었습니다. 반대로 인슐라 거주자는 씻는 것도, 식사도 바깥에서 해결해야 했어요. 프라이빗과 퍼블릭의 경계가 소득에 따라 완전히 뒤집혀 있었던 셈입니다.
제가 전원주택을 알아볼 때도 비슷한 구조를 느꼈습니다. 같은 전원주택이라도 누군가는 단지 내 공용 수영장과 커뮤니티 시설을 강조하고, 누군가는 외부인이 절대 들어올 수 없는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를 우선순위로 뒀습니다. 게이티드 커뮤니티란 외부 차량과 보행자의 진입을 물리적으로 차단한 폐쇄형 주거 단지를 의미합니다. 통과 차량이 없는 막다른 도로 구조, 경비 시스템, 고급 빌라 형태로 30세대 이하 소규모 단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실제로 서울의 고가 주거지를 살펴보면 대형 아파트 단지보다 이런 소규모 폐쇄형 단지의 시세가 더 높은 경우가 많습니다. 한강변 고급 단지나 이태원 인근 언덕 위 단독주거지가 대표적입니다. 이 현상은 앞으로 더 강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듈러 주택이 바꿀 공급 구조와 집값
모듈러 주택(Modular Housing)이란 공장에서 규격화된 단위 모듈을 사전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만 하는 건설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레고 블록처럼 공장 생산 후 현장 조립하는 건물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주거 공간으로 택한 조립식 주택이 화제가 된 것도 이 방식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제가 이 방식에 주목한 이유는 단순히 가격 때문만이 아닙니다. 국내 건설 현장의 구조적 문제와도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 건축 현장의 골조 작업은 상당 부분 외국인 노동자가 담당하고 있고, 이들의 임금은 국내 수준으로 맞춰져 있으면서도 수익 대부분이 해외로 송금됩니다. 건설업 특유의 낙수 효과가 국내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더 심각한 건 품질 문제입니다. 철근 결속 작업처럼 숙련된 손 감각이 필요한 공정은 검수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른바 '순살 아파트' 논란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공장에서 사전 제작된 건식 공법은 오차가 1mm 이하로 관리되고, 일본의 경우 이를 통해 도면과 완공 건물이 거의 100% 일치하는 수준을 달성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듈러 주택의 보급이 집값을 낮출 수 있을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공사비는 내려가겠지만 집값 전체는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압구정동 아파트가 비싼 이유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지하철 접근성, 백화점, 병원, 학군 같은 인프라 네트워크 때문입니다. 공사비가 절반으로 줄어도 그 네트워크 가치는 그대로 남습니다.
- 공장 사전 제작으로 현장 오차 최소화, 품질 균일성 확보
-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 감소로 국내 건설 경제 선순환 가능
- 건식 공법 비율이 높을수록 시공 품질이 안정적으로 향상
- 공사비 절감은 가능하나 입지 네트워크 가치는 별개로 유지됨
자율주행이 아파트 입면을 바꾸는 날
도시 면적의 약 15%는 도로입니다(출처: UN 지속가능발전 도시 보고서). 지금까지 이 공간은 오직 '이동'을 위한 곳이었습니다.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이 15%가 '머무는 공간'으로 전환됩니다. 차 안에서 핸들을 잡지 않아도 되니, 좌석이 서로 마주 보는 방 구조가 됩니다. 이동하는 방, 즉 모바일 룸이 수백만 개 생겨나는 셈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나아간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자율주행 차량이 건물 입면에 직접 도킹(Docking)하는 방식입니다. 도킹이란 차량이 건물 외벽에 붙어 연결되는 것으로, SF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건축 설계에서 실제로 검토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이렇게 되면 투베드 아파트에 차량 공간이 세 번째 방으로 추가되는 구조가 됩니다. 집의 방 개수가 주차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 시나리오를 처음 접했을 때는 반신반의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에너지입니다. 수백 킬로그램의 차량을 고층까지 매일 올리는 데 드는 에너지는 엘리베이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또 차량이 입면을 횡으로 이동하는 동안 다른 세대의 창문이 노출되는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식 모듈러 기술이 발전하면 이 입면 설계 자체를 처음부터 도킹 구조로 설계하는 건물이 등장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엘리베이터도 비슷한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뇌과학적으로 엘리베이터는 인간이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모르는 사람과 밀폐 공간에 갇혀 탈출 경로가 없는 상황은 원시적인 위협 반응을 촉발합니다. 자율주행 도킹 방식이 현실화되면 엘리베이터를 대체하는 이동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단순한 건축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심리와 도시 설계가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AI 시대 집의 가치는 스토리가 결정한다
AI가 건축 설계에서 가장 잘하는 것은 외관 생성입니다. 동대문 DDP 같은 형태는 하룻밤에 1,000개도 뽑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이게 오히려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 것 같습니다. 결과물이 넘쳐날수록 과정의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미슐랭 레스토랑과 패스트푸드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같은 재료로 만든 요리라도 셰프가 직접 나와 스토리를 설명하고, 플레이팅이 예술적이고, 공간 전체가 하나의 경험이 될 때 사람들은 그 값어치를 지불합니다. 반대로 동일한 음식을 스티로폼 용기에 담아 무인 기계에서 뽑아내면 아무도 돈을 내지 않습니다. 내용물은 같아도 스토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건축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AI로 생성된 얼추 비슷한 형태의 건물은 상상을 초월하는 저가로 공급됩니다. 반면 건축가가 직접 설계 과정을 설명하고, 그 집의 화장실 창문이 왜 그 방향인지 이유가 있는 공간은 훨씬 높은 가격을 받게 됩니다. AI는 결과물 모방은 탁월하지만 의사결정의 문법, 즉 왜 이 공간이 이 모양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절차적 논리는 아직 구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전원주택을 알아보면서 가장 마음이 갔던 집은 넓거나 비싼 집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 방향으로 창을 냈는지, 마당의 경사를 왜 이렇게 유지했는지 설계자의 의도가 느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앞으로 AI가 만든 집이 넘쳐날수록, 그런 스토리 있는 집의 희소가치는 오히려 높아질 것이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모듈러 주택이 보급되면 집값이 실제로 내려갈까요?
A. 공사비 자체는 낮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장 사전 제작으로 현장 인력 비용과 오차 수정 비용이 줄어드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집값 전체는 건축비보다 입지 네트워크, 즉 교통·학군·상업 인프라에 의해 결정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공사비 하락이 곧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땅값과 인프라 가치는 모듈러 기술과 무관하게 유지됩니다.
Q. 게이티드 커뮤니티가 앞으로 더 늘어날까요?
A. 소득 양극화가 지속되는 한 이 방향은 강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서울에서도 대형 아파트 단지보다 30세대 이하 소규모 폐쇄형 단지의 시세가 높게 형성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통과 차량 차단, 경비 시스템 강화, 소규모 커뮤니티 구성이 핵심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 구조는 로마 시대 도무스·인슐라 이분화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Q. AI가 건축 설계를 대체할 수 있나요?
A. 외관 형태 생성에 한해서는 이미 AI가 인간 건축가보다 빠르고 다양한 결과물을 냅니다. 그러나 '왜 이 공간이 이 구조여야 하는가'라는 프로그램적 의사결정, 즉 용도·동선·관계를 조율하는 설계 논리는 아직 AI가 재현하지 못합니다. 건축 과정의 절차적 데이터가 거의 기록되지 않아 학습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형태는 모방하지만 논리는 아직 없는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Q. 자율주행 시대에 집의 개념이 실제로 바뀌나요?
A. 자율주행 차량이 건물 입면에 도킹하는 방식이 현실화되면, 차량 공간이 하나의 방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투베드 아파트가 사실상 쓰리베드로 확장되는 셈입니다. 에너지 소비와 프라이버시 문제가 남아 있지만, 건식 모듈러 공법과 결합하면 초기 설계 단계부터 이를 반영한 건물이 등장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전망 단계이나 기술 방향은 이미 그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결론
집을 고를 때 저는 오랫동안 면적과 가격만 봤습니다. 그런데 전원주택을 알아보고, 모듈러 기술과 자율주행 관련 논의를 접하면서 기준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어떤 생활 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인가, 그 안에 설계자의 의도와 논리가 있는가가 훨씬 중요한 질문이 됐습니다.
양극화는 앞으로도 심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듈러 주택이 최소 주거의 대량 공급을 가능하게 하고, 게이티드 커뮤니티와 스토리 있는 건축은 소수의 고가 시장을 형성할 것입니다. 이 두 방향 사이에서 자신의 생활 방식에 맞는 공간을 고르는 눈을 갖추는 것이 앞으로 집을 선택할 때 가장 현실적인 기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