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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모종 가게에 가서 그냥 "김장배추 주세요" 한마디로 모종을 사왔습니다. 품종 이름 같은 건 확인도 안 했어요. 그런데 그해 배추 절반이 뿌리 쪽에서 혹이 맺혀 못 쓰게 됐을 때, 처음으로 '내가 품종을 제대로 골랐어야 했구나' 싶었습니다. 김장배추는 1년을 두고 먹는 채소인 만큼, 품종 하나 차이가 생각보다 훨씬 큰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김장배추 품종 (품종선택, 모종고르기, 뿌리혹병)

품종선택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들

인터넷에 '최고의 김장배추 품종'이라는 제목의 글이 정말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런 글들을 찾아서 거기서 추천하는 품종을 그대로 따라 샀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여러 품종을 심어보면서 깨달은 건, '최고의 품종'이란 건 사실 없다는 점입니다.

제가 사는 지역과 밭의 토양 상태, 햇빛이 드는 방향, 물을 줄 수 있는 환경이 모두 다릅니다. 같은 품종이라도 어떤 밭에서는 속이 꽉 차고, 다른 밭에서는 겉돌 수 있어요. 농촌진흥청에서도 배추 재배 시 재배 시기와 지역 환경, 기호성에 맞는 품종 선택을 강조하고 있는데(출처: 농촌진흥청), 그 이유가 바로 이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 김장배추를 심을 때 한 품종을 대량으로 심기보다 두세 가지 품종을 나눠서 심어보는 방식을 권하고 싶습니다. 한 품종만 심었다가 그 품종이 우리 밭과 맞지 않으면 한꺼번에 문제가 생기거든요. 반대로 나눠 심으면 어느 품종이 병에 강했는지, 어느 것이 속이 잘 찼는지 직접 눈으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방법이 가장 확실한 시행착오였습니다.

요약: '최고 품종'보다 내 밭 환경에 맞는 품종 선택이 더 중요하며, 처음에는 두세 가지를 나눠 심어 비교하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뿌리혹병에 강한 CR 계통 품종

제가 그해 배추를 망쳤던 주범이 바로 뿌리혹병이었습니다. 뿌리혹병(Clubroot)이란 토양 속 병원균인 Plasmodiophora brassicae가 배추 뿌리에 침투해 혹처럼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병으로, 뿌리가 제 기능을 못 하면서 배추 전체가 서서히 죽어가는 병입니다. 한 번 발병한 밭에서는 균이 수십 년씩 살아남아 다음 해에도 같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게 무섭습니다.

이 뿌리혹병에 내성을 갖춘 것이 CR(Clubroot Resistance) 계통 품종입니다. 여기서 CR이란 뿌리혹병 저항성(Clubroot Resistance)을 의미하는 약자로, 이 유전 형질이 추가된 품종은 병원균이 있는 토양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라는 특성을 갖습니다.

CR 계통의 대표 품종으로는 불암 플러스와 휘파람 골드가 있습니다. 불암 플러스는 기존에 가장 많이 재배되던 불암 3호에 CR 기능을 추가한 품종으로, 통이 크고 속이 잘 차서 전업농은 물론 텃밭 재배자들에게도 현재 가장 많이 선택받는 품종입니다. 제가 2년 전 직접 다섯 품종을 나란히 심어서 비교해봤는데, 불암 플러스는 75일째에도 통이 크고 속이 단단하게 찼습니다.

휘파람 골드는 불암 플러스보다 통이 약간 작습니다. 그런데 제가 먹어보니 줄기가 얇아서 식감이 더 부드러웠고, 저장성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가족이 먹을 양을 자가 소비용으로 기르는 분들이 선호하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CR 계통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맛과 식감에서 두 품종 사이에 차이가 분명히 느껴졌습니다.

  • 불암 플러스: CR 계통, 통 크고 속이 잘 참, 전업농·텃밭 모두 인기
  • 휘파람 골드: CR 계통, 통은 다소 작으나 줄기가 얇고 저장성 우수
  • 불암 3호: CR 기능 없는 원조 품종, 뿌리혹병 걱정 없는 밭에 적합
요약: 뿌리혹병 발생 이력이 있는 밭이라면 CR 계통인 불암 플러스 또는 휘파람 골드를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기능성 배추, 먹어보니 달랐습니다

일반적으로 배추는 클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어요. 그런데 기능성 배추를 심어보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기능성 배추란 단순히 수확량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특정 생리활성 성분을 강화한 품종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항암 배추(황암 배추)와 베타후레시(황금 배추)입니다.

항암 배추에는 베타카로틴(β-carotene)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베타카로틴이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는 항산화 물질로, 활성산소를 억제하고 세포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을 주는 성분입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 따르면 기능성 배추류는 일반 배추 대비 특정 항산화 물질 함량이 높은 것으로 분석됩니다(출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다만 통이 작은 편이라서 수확량 면에서는 불암 플러스에 미치지 못합니다.

베타후레시는 속이 노랗고 베타카로틴과 라이코펜(Lycopene)이 함께 들어 있는 품종입니다. 라이코펜이란 토마토에 많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항산화 성분으로, 활성산소 제거 능력이 특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타후레시는 항암 배추보다 통이 약간 크고 단맛도 더 강했습니다. 제가 직접 김치로 담가봤을 때 색깔이 훨씬 노랗게 나왔고, 식탁에서 가족들 반응도 꽤 좋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요약: 베타카로틴과 라이코펜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기능성 배추는 수확량보다 건강과 맛을 우선하는 텃밭 재배자에게 적합합니다.

 

좋은 배추 모종 고르는 기준

품종을 정했다면 다음은 모종을 직접 눈으로 골라야 합니다. 제가 실제로 모종 가게에서 겪은 일인데, 같은 품종 이름이 붙어 있어도 모종 상태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출하된 지 오래된 모종인지 갓 나온 모종인지에 따라 밭에 심은 뒤 활착 속도가 크게 달랐습니다.

육묘(育苗)란 씨앗을 포트나 트레이에서 키워 일정 크기로 길러낸 뒤 이식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배추 모종의 표준 육묘 기간은 20~25일로, 이 기간을 마친 모종이 시장에 출하됩니다. 그런데 출하 후 판매 기간이 길어지면 모종이 웃자라거나 뿌리가 엉켜 활착이 더뎌집니다.

제 경험상 가장 좋은 모종의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본잎(子葉 이후 나오는 잎)이 7~8장 정도 나온 것입니다. 너무 많이 자랐거나 반대로 잎이 4~5장밖에 안 된 모종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째는 줄기가 웃자라지 않고 마디가 짧으며 전체적으로 탄탄한 것입니다. 웃자란 모종은 심고 나서도 힘없이 늘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 번째는 잎 색깔이 연한 노란빛이 아닌 진한 초록색으로 싱싱해 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제 저는 모종 가게에 가면 제일 먼저 "이 모종 품종이 뭐예요?"부터 물어봅니다. 그리고 잎을 직접 세어봅니다. 귀찮아 보이지만, 이 한 가지 습관이 그해 김장의 반 이상을 결정한다는 걸 직접 겪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요약: 좋은 배추 모종은 육묘 20~25일, 본잎 7~8장, 줄기가 짧고 탄탄하며 잎색이 진한 초록인 것이 기준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불암 플러스랑 불암 3호는 뭐가 달라요?

A. 불암 3호는 CR 기능이 없는 원조 품종이고, 불암 플러스는 여기에 CR(뿌리혹병 저항성) 유전 형질을 추가한 개량 품종입니다. 뿌리혹병 이력이 있는 밭이라면 불암 플러스가 안전하고, 뿌리혹병 걱정이 없는 토양에서는 불암 3호도 여전히 잘 자랍니다. 일반적으로 불암 3호가 더 저렴한 경우가 많아서 밭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선택하는 게 좋습니다.

 

Q. 항암 배추라고 하는데 정말 암 예방에 효과 있나요?

A. 항암 배추라는 이름이 다소 과장처럼 들릴 수 있는데, 정확히는 베타카로틴 함량이 일반 배추보다 높은 기능성 품종입니다. 베타카로틴은 활성산소를 억제하는 항산화 성분으로 알려져 있고, 직접적인 암 치료 효과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건강 기능 면에서 일반 배추보다 부가적인 이점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의학적 효능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Q. 배추 모종을 살 때 웃자란 것은 어떻게 알아봐요?

A. 줄기 마디가 길고 전체적으로 가늘게 위로만 뻗어 있으면 웃자란 모종입니다. 제가 경험상 이런 모종은 심고 나서 며칠 안에 축 늘어지거나 뿌리 활착이 느려 초기 생장이 더뎠습니다. 본잎이 7~8장이면서 줄기가 짧고 통통한 것이 건강한 모종의 기준입니다.

 

Q. 처음 김장배추 심는데 어떤 품종이 실패 확률이 낮을까요?

A. 저라면 처음엔 불암 플러스와 휘파람 골드를 반반씩 나눠 심겠습니다. 두 품종 모두 CR 계통으로 뿌리혹병에 강하고 재배 안정성이 높아서 초보 재배자에게 실패 리스크가 낮은 편입니다. 한 품종만 대량으로 심는 것보다 두 종류를 비교해보면 다음 해에 훨씬 자신 있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결론

김장배추 품종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결정입니다. 뿌리혹병이 걱정되는 밭이라면 CR 계통인 불암 플러스나 휘파람 골드가 맞고, 건강 기능을 중시한다면 항암 배추나 베타후레시(황금 배추)가 좋습니다. 하지만 어떤 품종이 내 밭과 맞는지는 결국 직접 심어봐야 압니다.

제가 이 결론에 이르기까지 몇 해를 날렸습니다. 그러니 처음 심는 해에는 두세 가지 품종을 조금씩 나눠 심고, 수확 후에는 어느 품종이 잘 자랐는지 기록해 두시기를 권합니다. 그 기록이 다음 해 가장 믿을 만한 재배 데이터가 됩니다. 모종 가게에서 "품종이 뭐예요?"라고 한 마디 더 묻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5TAcucNlXk